거대한 기술 실험은 누가 허락하는가
기술이 거대해질수록 어려워지는 질문
얼마 전 스타링크에 관한 글을 썼다.
2004년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두 달 정도 생활하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스타크래프트 한 판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기억에서 시작한 글이었다.
인터넷 연결이 끊겨 게임에서 '드랍'되던 시절을 지나, 사람들이 자신의 Wi-Fi를 조금씩 공유해 세계적인 인터넷망을 만들어보자던 FON의 실험이 있었고, 이제는 수많은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전 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려는 스타링크의 시대까지 왔다.
그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그저 기술의 발전이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마무리하면서 조금 다른 질문이 남았다.
저렇게 많은 위성을 지구 주변에 띄우는 일은 누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기업의 위성이지만, 기업의 우주는 아니다
물론 스타링크라고 해서 한 기업이 아무런 허가 없이 마음대로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위성을 발사하고 통신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국가의 허가와 규제를 받아야 하고, 국제적으로도 우주 활동에 관한 여러 원칙이 존재한다. 그러니 일론 머스크라는 한 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지구 주변을 위성으로 채우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런데도 묘한 느낌은 남는다.
위성을 만든 것은 기업이고, 발사를 허가한 것은 특정 국가다.
하지만 그 위성이 돌아다니는 곳은 그 기업이나 국가만의 공간이 아니다.
미국에서 허가받은 위성이라고 미국 상공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위성은 지구를 돌고, 그 위성이 반사하는 빛은 다른 나라의 천문대에서도 관측된다. 실제로 대규모 저궤도 위성군이 천문관측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천문학계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위성이 많아질수록 우주쓰레기와 충돌 가능성이라는 문제도 함께 커진다.
물론 스타링크 위성 하나가 충돌한다고 곧바로 지구 주변의 모든 위성이 도미노처럼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궤도상의 물체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충돌로 발생한 파편이 다시 다른 물체와 충돌하면서 우주쓰레기가 계속 증가할 수 있다는 '케슬러 신드롬'은 오래전부터 연구되어 온 문제다.
그래서 지난 글의 마지막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고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 기술이 영향을 미치는 공공의 영역까지 기업의 판단에 맡겨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고 반대로 새로운 위성 하나를 띄울 때마다 세계 모든 나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현실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생각보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기억이 하나 더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뉴스를 통해 보았던 거대한 과학실험이 떠올랐다.
스위스 제네바 인근 CERN에 만들어진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 다.
둘레가 약 27km에 이르는 거대한 원형 가속기에서 양성자를 거의 빛의 속도까지 가속한 뒤 서로 충돌시킨다. 그렇게 물질을 극한의 상태로 만들어 우리가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장치다.
그리고 2012년, 이곳에서 굉장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이론으로 존재했던 힉스 보손(Higgs boson)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후 이것이 힉스 보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관련 이론을 제시했던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는 이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꽤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내 기억에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저런 실험을 해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LHC가 처음 가동되던 2008년을 전후해 일부에서는 고에너지 입자 충돌 과정에서 미세한 블랙홀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스트레인지렛이라는 가상의 물질이 생성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조금 과장되면서 이야기는 훨씬 자극적으로 변했다.
“입자가속기 실험을 잘못하면 지구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아니냐.”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LHC는 계속 운영됐고 2012년에는 힉스 보손을 발견했으며, 2015년에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충돌에너지로 다시 가동됐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과학자들도 당시 제기된 위험을 그냥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안전성 검토가 이루어졌고, 자연 상태에서도 LHC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의 우주선 충돌이 오랜 세월 일어나 왔다는 점 등을 근거로 그러한 재앙적 시나리오는 현실적인 위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 역시 LHC가 위험한 실험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그때 제기됐던 질문 자체다.
만약 확률은 아주 낮지만 결과가 너무 크다면
가정을 하나 해보자.
어떤 새로운 실험이 있다. 실패할 확률은 10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연구시설 하나가 파괴되는 정도라면 판단은 상대적으로 간단할 것이다. 실험을 수행하는 기관과 국가가 위험을 평가하고,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그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조건 하나를 바꿔보자.
확률은 여전히 100만 분의 1이다. 하지만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한 도시나 한 국가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누가 그 100만 분의 1을 감수해도 된다고 결정할 수 있을까.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이 결정하면 될까. 연구시설이 있는 국가의 정부가 허가하면 되는 것일까.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검증해서 “문제없다”고 하면 충분한 것일까. 아니면 위험의 결과를 함께 부담해야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결정권이 있어야 할까.
물론 여기서 100만 분의 1이라는 숫자는 LHC의 실제 위험 확률이 아니다. 단지 생각을 해보기 위한 가상의 숫자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그 결정의 결과를 감수하는 사람이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이 더 흥미롭다.
스타링크와 입자가속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생각해 보면 스타링크와 LHC는 전혀 다른 기술이다.
하나는 인터넷을 제공하는 민간기업의 통신 서비스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연구하기 위한 국제적인 과학시설이다. 위험의 종류도, 가능성도, 관리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그런데 내가 두 사례를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의 근원은 묘하게 비슷하다.
기술을 실행하는 주체보다 그 기술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훨씬 커지고 있다는 것.
스타링크 위성은 기업이 만들었지만 밤하늘은 기업의 것이 아니다.
지구 저궤도 역시 어느 한 국가의 영토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과학실험이 정말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실험을 수행하는 연구기관과 과학자들만이 위험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기술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공장 주변이 영향을 받았다. 댐에 문제가 생기면 그 지역이 위험했다. 발전소 사고라면 영향 범위가 더 넓어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지리적인 범위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 기술 가운데 일부는 점점 그 경계를 벗어나고 있다.
우주 공간을 이용하고, 지구 환경을 바꾸고, 생명 자체를 조작하고, 세계의 정보망을 움직인다.
기술을 개발하는 주체는 여전히 기업 하나, 연구소 하나, 혹은 몇 개 국가일 수 있는데 그 기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어느 순간 인류 전체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기서 또 어려워진다.
위험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새로운 연구를 하지 말아야 할까.
그것도 이상하다.
새로운 기술에는 언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동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상당수의 과학적 발견과 기술혁신은 시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과학자들이 괜찮다고 했으니 과학자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말하기에도 무언가 부족하다.
기업이 자기 돈을 투자해서 개발했으니 기업이 결정하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결정의 구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술의 영향력이 한 기업이나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는데도, 그것을 허가하고 관리하는 우리의 방식은 여전히 기업과 국가라는 기존의 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안전기술만 발전해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기술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 역시 함께 발전해야 한다.
얼마 전 스타링크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지막에 “이 거대한 시스템은 누가 관리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질문은 스타링크보다 훨씬 컸다.
한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들의 판단에 맡길 것인가.
그리고 반대로,
사회는 어디부터 개입해야 하는가.
아직 내게도 명확한 답은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하나의 기술이 자꾸 머릿속에 걸린다.
인공지능이다.
지금 세계의 몇몇 기업과 연구기관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인공지능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만약 언젠가 그 기술의 영향 범위가 개발한 기업이나 국가를 넘어 인류 전체에 미칠 정도가 된다면, 결국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연구를 어디까지 진행해도 되는지는, 과연 누가 결정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