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가 지금 『푸코의 진자』를 썼다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에는 ‘아불라피아(Abulafia)’라는 이름의 컴퓨터가 등장한다. 처음 이 이름을 접했을 때는 그저 에코다운 지적인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불라피아라는 이름의 기원을 알고 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브라함 아불라피아는 13세기의 유대 신비주의자였다. 그의 사상에서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어 문자를 결합하고, 치환하고, 순서를 바꾸는 것이었다.
이른바 ‘문자 결합의 지혜’였다.
그는 문자를 단순한 언어의 도구로 보지 않았다. 문자의 배열과 조합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평상시의 사고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불라피아의 목적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지식 탐색과는 달랐지만, 적어도 그 방법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기호를 다시 배열함으로써 그 안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를 발견하려 했다는 점이다.
수백 년 뒤 에코는 그 이름을 컴퓨터에 붙였다.
소설『푸코의 진자』에서 출판사 편집자들은 기사단, 카발라, 장미십자회, 신비주의, 음모론 등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의 수많은 자료를 모은다. 그리고 그것들을 컴퓨터에 입력해 관계를 만들어낸다.
에코는 그 컴퓨터를 '아불라피아'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일종의 지적인 놀이였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억지로 연결하면 얼마나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게임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많은 조각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계획(The Plan)’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실제의 진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에코가 그 컴퓨터를 아불라피아라고 부른 것은 우연한 선택처럼 보이지 않는다.
13세기의 아불라피아가 문자를 조합했다면, 20세기의 아불라피아는 정보를 조합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다음 단계에 와 있다.
오늘날의 LLM은 인류가 만들어놓은 엄청난 양의 언어를 학습한다. 수많은 문장과 개념, 사건과 지식 사이의 관계를 내부적으로 구성하고, 사용자의 질문에 따라 그것들을 다시 연결한다. 인간이 직접 작성하지 않았던 문장을 만들고, 서로 다른 분야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때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제시한다.
이 과정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이상하리만큼 아불라피아적이다.
기호를 분해하고, 관계를 만들고, 다시 조합한다. 그리고 그 조합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나타난다.
만약 움베르토 에코가 오늘날 이 소설을 썼다면 과연 단순한 컴퓨터에게 아불라피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마도 AI에게 그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푸코의 진자』가 그려낸 1980년대의 아불라피아는 인간이 입력한 정보를 계산하고 조합하는 도구였다. 의미를 만드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었다. 편집자들이 자료를 선택했고, 규칙을 만들었으며, 연결을 해석했다.
문제는 그 연결이 점점 그럴듯해졌다는 데 있었다. 연결이 많아지고 이야기가 정교해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를 스스로 믿기 시작한다.
AI를 사용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AI가 열 개의 단서를 하나의 논리로 엮어 설명하면 우리는 그 설명 자체의 완성도에 설득된다. 문장은 자연스럽고, 논리는 매끄럽고, 각각의 조각은 실제 사실에 기반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사실들 사이의 관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어쩌면 『푸코의 진자』는 AI에 관한 소설이 아니면서도, AI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경고를 이미 담고 있었던 셈이다.
에코가 지금 『푸코의 진자』를 다시 쓴다면, 이야기의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람들이 컴퓨터가 만든 ‘계획’을 믿기 시작하는 장면이 아닐지도 모른다.
AI가 만들어낸 관계를 바라보며 인간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일 것이다.
“이건 단순한 조합이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