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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나를 더 잘 알수록, 나는 무엇을 잃게 될까

· 약 5분

우리는 AI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평소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는지 알고 있다면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 일정과 업무를 파악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며, 때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까지 제안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AI가 나를 더 잘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나에 대한 정보다.

이전에 쓴 「우리는 개인정보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에서는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더라도 내게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에는 그다음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AI가 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게 된다면, 내가 직접 알려주지 않은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정보를 저장하는 것과 사람을 이해하는 것​

지금까지 디지털 서비스들은 우리의 정보를 다양한 형태로 축적해 왔다.

이메일 서비스에는 대화와 업무 기록이, 쇼핑몰에는 구매 이력이, 검색엔진에는 관심사가, 지도 서비스에는 이동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정보들은 각각의 서비스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어 왔다. 물론 기존에도 여러 데이터를 결합해 사용자를 분석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기술은 존재했다.

그러나 개인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되면 이러한 정보들을 활용하는 방식은 한층 달라질 수 있다.

가령 AI가 내 이메일과 일정, 업무 문서, 검색 기록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AI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중요한 약속을 정리하며, 필요한 업무를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의사결정과 대화 기록을 바탕으로 내가 선호할 만한 선택지도 제안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매력적인 미래다.

하지만 같은 정보로 전혀 다른 일도 가능해진다.

내가 누구와 자주 연락하는지,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무엇에 불안감을 느끼는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바꾸는지까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AI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만, AI는 그 정보로부터 우리가 제공하지 않은 정보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말하지 않은 나의 정보​

예를 들어 보자.

나는 AI에게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직접 설명한 적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 기록과 이메일, 일정 등을 종합하면 경제적 여건이나 소비 성향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건강 상태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검색 기록과 구매 이력, 병원 일정에서 관련 징후를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여러 사람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나 빈도를 분석하면 인간관계의 변화나 감정 상태를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론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성만이 아니다. 개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능력 자체다.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는 주로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하며 제공하는가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해진다.

내가 제공한 정보뿐 아니라, 그 정보로부터 추론된 나에 대한 정보는 누구의 것일까?

내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을 AI가 다른 데이터에서 추론해 냈다면, 그것도 내가 공개한 정보라고 볼 수 있을까?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그 정보로부터 자신에 대한 새로운 판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은 같은 문제일까?

편리함이 커질수록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

개인 AI의 성능을 높이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는 사용자에 대한 맥락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내 업무를 모르는 AI보다 업무 문서를 이해하는 AI가 유용하다. 내 일정을 모르는 AI보다 일정을 파악하는 AI가 편리하다. 과거의 대화와 선택을 기억하는 AI는 매번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 AI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더 나은 서비스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AI에 연결하려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일정과 이메일 정도일 수 있다. 이후 업무 문서와 개인 메모, 사진, 금융정보까지 연결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AI는 단순히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는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이해하고 판단을 보조하는 존재가 된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관계가 있다.

AI가 나를 더 잘 알수록 서비스는 편리해지고, 서비스가 편리해질수록 나는 AI가 나를 더 많이 알기를 원하게 된다.

개인화의 편익이 다시 개인정보 제공을 유도하는 구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AI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사용자 자신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

우리는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 판단 기준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관심사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어렵다.

반면 AI는 방대한 기록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어떤 상품을 선호하는지, 어떤 유형의 제안에 쉽게 반응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결정을 미루는지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AI가 특정 영역에서는 나 자신보다 내 행동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상황도 가능해진다.

여기서 문제는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선다.

AI가 나의 선호와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 정보를 이용해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AI가 추천하는 상품, 제안하는 일정,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정보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일 수도 있다. 동시에 AI를 운영하는 기업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사용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안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제안이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나를 이해하는 기술은 나를 돕는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통제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개인정보 보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정보의 유출이었다. 누군가 내 정보를 훔쳐 가거나 허락 없이 사용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그러나 개인 AI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오면 정보가 유출되지 않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AI가 나에 대해 무엇을 추론하는지, 그 추론을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지, 어떤 판단에 활용하는지, 나에게 제시하는 선택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의 문제다.

이제 개인정보 보호는 단순히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를 넘어, 나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누가 통제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더 편리한 삶을 위해 AI가 자신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AI가 개인의 업무와 일상을 더 깊이 지원할수록 이러한 요구는 커질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AI에게 넘겨주는 것은 단순한 개인정보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을 해석하고, 취향을 판단하고, 앞으로의 선택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까지 함께 넘겨주는 것일 수 있다.

AI가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미래는 분명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 AI가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조차 내가 알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누가 누구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일까?